“종철아, 네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종철아, 네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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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민주항쟁 31주년…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

 

 

1987년 6월. 우리는 매우 뜨거웠습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 ‘타는 목마름으로’ 우리는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박종철을 살려내라!” 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그렇게도 매서운 최루탄 가스를 들이마시고, 경찰에게 연행될지언정 모두 ‘민주화’라는 열망 하나로 똘똘 뭉쳤습니다.

‘화이트 칼라’라고 불리는 직장인들도 창문을 열며 시위에 동참했고, 택시, 버스 기사들은 경적을 울려대며 ‘탁’ 치니 ‘억’하고 죽은 청년을 위로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에 의해 싸늘한 주검이 된 박종철이라는 청년을 위해, 우리는 더 가열차게 싸웠습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현장조사 모습.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현장조사 모습.

31년이 지난 6월, 민주화를 쟁취한 우리는 대선, 총선, 지선을 모두 직선제로 뽑고 있습니다. 오는 13일에 치러지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도 31년 전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르겠습니다. 6.10 민주항쟁 31주년을 맞아, 남영동 대공분실로 향했습니다.

현재 남영동 대공분실은 지난 2005년 대공 업무가 홍제동 대공분실로 모두 이관됨에 따라, 현재는 경찰청 인권센터와 박종철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박종철의 대학 동창이자 2006년부터 박종철기념사업회에서 활동 중인 김학규 이사를 만났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했던 곳이다.
남영동 대공분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했던 곳이다.

6.10 민주항쟁 전날이다 보니, 많은 사람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습니다. 김학규 이사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는 이들에게 무료로 해설을 하고 있는데요. 이날은 마침 경기도교육청 역사교사들이 연수를 왔습니다.

설명 중인 김학규 이사의 모습.
설명 중인 김학규 이사의 모습.

김학규 이사의 설명을 들으며 남영동 대공분실을 함께 둘러봤습니다. 먼저 외관을 보면 조사실이 있던 5층만 창문이 매우 비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학규 이사는 “창문을 통해 도망가려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 것”이라며 “5층에는 총 16개 방이 있는데, 모두 지그재그식으로 설치돼 서로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5층. 유난히 창문이 비좁다.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유난히 비좁다.

김학규 이사를 따라 조사실이 있던 5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는 나선형 계단을 통해 5층 조사실에 들어온 순간,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된 509호가 보였습니다. 여기가 바로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았던 곳입니다.

친구가 고문을 받다 죽은 곳을 살짝 바라본 김학규 이사는 “제게 종철이의 한이 서린 남영동 대공분실이 이제 국민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친구 종철이가 잠든 이 곳에서...
친구 종철이가 잠든 이곳에서…

그렇게 남영동 대공분실을 둘러 본 뒤, 박종철이 걸어온 길을 함께 걷는 취지에서 김학규 이사와 시청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박종철의 영정을 들고 걷는 친구의 모습. 김학규 이사는 조심스럽게 시민에게 남영동 대공분실이 환원된다면, 박종철 뿐만 아니라 이 곳에서 고문 받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실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김학규 이사는 “만약 인권기념관으로 건립된다면, 반드시 치유센터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광주에 있는 5.18 치유센터와, 안산에 있는 세월호 치유센터 같이 고문피해자들을 위한 치유센터가 설치돼야 한다는 것인데요. 또 김학규 이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니 ‘배움의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학규 이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필자.
김학규 이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필자.

남영동에서 시청까지 함께 걸었던 다음날인 6월 10일. 서울시청에서 제31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민주에서 평화로’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이날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대독했습니다. 과연 인권기념관을 원하던 박종철 열사의 친구, 김학규 이사의 바람은 이뤄질까요.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피해자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피해자 이선근 씨.(출처=KTV)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민주주의 역사에는 고문과 불법감금, 장기구금과 의문사 등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많은 분들의 절규와 눈물이 담겨있다.”며 대표적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지목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장이 고문당하고, 박종철 열사가 희생된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또한 ‘민주인권기념관’은 “2001년 여야 합의에 의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을 제정하고 건립을 추진해왔던 사업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시민사회의 오랜 노력으로 사회적 여론이 조성되었고 정부가 지원을 결정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비롯하여 공공기관, 인권단체들, 고문피해자와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이 공간을 함께 만들고 키워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남영동 대공분실에 있던 경찰청 인권센터가 이전하게 되면,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동시에 민주주의의 미래를 열어가는 공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 같습니다. 31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남영동 대공분실. 김학규 이사는 친구 종철이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대독한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출처=KTV)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대독한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출처=KTV)

“이제야 시민 품으로 돌아오게 해서 미안하다. 종철아, 네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31년이 지난 지금, 이 공간은 이제 시민 품으로 돌아갈 예정이야.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적인 공간이 될 남영동 대공분실. 종철아, 이제는 네가 편안하게 잠들었으면 좋겠다.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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