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유예를 발표한 가운데 국내 자동차 업계가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 상황에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미 시행 중인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 25%가 그대로 유지되는 데다 정부가 내놓은 긴급지원책이 내수 진작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실질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11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앞서 지난 9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자동차 생태계 강화를 위한 긴급 대응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전기차 보조금 확대 ▷개별소비세 감면 ▷공공 업무차량 조기 구매 등 수출이 줄어든 자리를 내수가 메울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의 25% 자동차 관세 조치로 대미 수출에 빨간불이 켜진 자동차 업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서둘러 마련한 지원책의 일환이다.
먼저 제조사 할인 금액에 연동하는 전기차 보조금 제도 종료 시점을 올해 상반기에서 연말까지로 연장하고, 정부 매칭 지원 비율도 기존 20∼40%에서 30∼80%로 확대한다. 아울러 상반기 종료 예정이었던 신차 구매 개별소비세 탄력세율 적용(5%→3.5%)도 추가 연장을 검토한다.
여기에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올해 추진하는 업무 차량 구매를 최대한 앞당겨 상반기까지 계획 대비 70%, 3분기까지 100% 조기 구매를 유도하고, 자동차 수출 다변화를 위한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신흥개도국) 등 신시장 진출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이 같은 응급처방에도 업계를 중심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전체 판매량에서 내수 대비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큰 만큼 내수진작에 초점을 맞춘 지원책만으로는 위기를 타개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외국계를 포함한 국내 완성차 5개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모두 794만7710대를 팔았다. 이 가운데 수출은 658만8328대로 전체의 약 83%를 차지했다.
업체별 실적 역시 수출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현대차는 지난해 전체 판매량 414만1791대에서 수출이 83% 수준인 343만6781대를 기록했고, 기아 역시 수출 비중이 82%를 차지했다. GM 한국사업장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GM 한국사업장은 지난해 해외 시장에서만 47만4735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전체 판매량의 95%에 달하는 수치다.
올해 1분기(1~3월) 국내 5개사 전체 판매량(192만8675대)에서 수출(160만8889대)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인 83%로 나타났다.
전기차 보조금 확대 정책 역시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1분기 현대차·기아가 국내에서 판매한 전기차는 모두 2만3159대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75.6% 늘어난 수치이지만, 내수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7%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이나 일본에서도 이번 미국의 자동차 관세 조치 대응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에서 이 같은 조치에 나서주는 것은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일이지만, ‘관세 리스크’를 덜어내기 위한 한미 정부 간 진전 있는 협상이 하루 빨리 성사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자동차 생산량의 80% 이상을 수출하고 있고, 내수 시장 규모는 20%가 채 되지 않는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내수 진작에 초점을 맞춘 정책·제도적 지원은 국내 기업들에 메리트 있는 해법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 현지에서 임시로 가격을 동결하는 기업들의 자구책도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며 “지금은 입법부와 행정부가 원팀이 되어 각종 규제 완화 및 대미 협상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서둘러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