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카카오, 구글, 메타(페이스북)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의 가짜뉴스 관련 심의 진행시 해당 기사나 게시물에 ‘심의 중’ 표시 또는 ‘삭제·차단’ 조치를 하기로 했다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27일 밝혔다. 방통위는 사업자의 자율규제라고 밝혔지만 정부가 논의를 주도해왔고, 정작 포털이 기존에 정립한 가짜뉴스 관련 자율규제 기준에도 어긋난다. ‘심의 중’ 표시 도입은 언론 보도에 ‘낙인’이 될 우려가 있다.
방통위는 27일 오후 네이버, 카카오, 구글, 메타와 함께 ‘가짜뉴스 대응 민관협의체’를 출범했다고 밝히며 “가짜뉴스가 초기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선 방통심의위와 사업자 간 자율규제 기반의 패스트트랙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방통위와 방통심의위는 뉴스타파의 김만배 녹취록 보도 논란을 계기로 인터넷언론을 대상으로 가짜뉴스 심의에 나선다고 밝혔다.
▲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가짜뉴스 신속심의를 위한 패스트트랙 순서도
방통위에 따르면 패스트트랙 절차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접수한 가짜뉴스 사례 중 신속심의 여부를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 사업자에게 자율규제 협조 요청하게 된다. 요청을 받은 사업자는 내용을 검토한 후 해당 콘텐츠에 ‘방통심의위에서 가짜뉴스 신속심의 중입니다’라는 표시를 하거나 삭제·차단 등의 조치를 취한다.
네이버·카카오 ‘심의 중’ 표시 도입, 구글 “결정 안 돼”
양대 포털 사업자들은 방통심의위가 긴급심의 중인 안건에 ‘심의 중 표시’는 도입하겠다고 밝힌 반면 심의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삭제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 포털 관계자는 “신속심의 착수 통보만으로 기사에 대한 차단 및 제한 조치는 검토한 바 없다”며 “정부의 자율규제 협조 요청에 따라 방심위 신속심의 착수 통보 시 ‘심의 중’ 표기 조치 예정”이라고 밝혔다.
▲ 네이버 ‘정정보도’ 문구 표기 예시. 앞으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에 나선 언론 보도에도 ‘심의 중’ 표시가 뜬다.
구글코리아 홍보 관계자는 기사 차단·삭제, ‘심의 중 표시’ 등에 관해 “이제 협의체가 구성된 단계로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방통위 이용자정책국 관계자는 “심의 중인 내용에 관해 사업자별로 기준에 따라 검토한 다음 삭제를 하거나, 또는 ‘심의 중 표시’ 중 하나를 하로 한 것”이라고 했다.
‘심의 중’ 표시 언론에 ‘낙인’ 우려
심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보도에 ‘심의 중’ 표시가 뜨면 언론 보도에 ‘낙인’을 찍는 효과가 예상된다. 방통심의위 심의가 이뤄진 사안 가운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제재나 시정요구를 결정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일례로 2020년 방통심의위는 코로나19 관련 심의에 나선 정보 4624건 가운데 200건만 시정요구를 했다. 보도 내용 중 지엽적인 내용을 심의할 경우 전체 보도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해석될 우려도 있다.
특정 세력이 의도를 갖고 특정 언론이나 보도에 ‘낙인’을 찍게 될 수도 있다. 방통심의위는 정당이 자신들에 불리한 보도에 집단적 민원을 제기해 심의를 진행해 논란이 됐고, 박근혜 정부 때 정부비판적 보도에 심의 민원이 제기되지 않자 ‘셀프’로 민원을 넣어 심의를 진행해 담당 직원이 해고된 사례도 있다. 더구나 방통심의위가 인터넷신문을 ‘가짜뉴스’로 규정해 심의하는 건 권한 밖의 업무이며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18일 논평을 통해 “단지 허위라는 의심, 그마저도 권리침해의 당사자가 아닌 불특정 대중의 신고만으로 ‘심의 중’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하는 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치 권력 또는 극단적 지지층이 정파적인 목적으로 비판 보도를 공격하는 데 악용될 우려가 매우 크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이번 심의 패스트트랙을 담당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언론 낙인효과’ 등 우려에 관해 문의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방통심의위, 사업자와 협의를 했고, 사업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방안을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사업자의 자발적 결정? 기존 자율규제와 충돌
방통위 관계자는 ‘자율규제’를 언급하며 사업자의 자율적 결정이라고 했지만 정작 방통위의 패스트트랙 방안은 네이버 카카오 등이 만든 자율규제 기준과 충돌한다.
2018년 네이버, 카카오 등이 소속된 자율규제기구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논의를 거쳐 가짜뉴스의 기준을 ‘언론보도를 사칭한 내용이 허위인 게시물’로 규정했다. 언론보도는 가짜뉴스로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방통심의위가 인터넷언론 등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자 기존 논의와 달리 언론보도도 가짜뉴스로 규정한 논의를 수용했다.
▲ 8월28일 오전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과천정부청사에서 6기 방통위 출범 직후 첫 회의를 열었다. ⓒ연합뉴스
방통위는 ‘사업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고 했지만 민관협의체 구성 직후 바로 안을 마련해 숙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각종 법률에 따라 조사권, 과징금 부과 등 사업자 제재 권한을 가진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뽑아 사업자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사업자에게는 거부하기 힘든 압박이 된다”며 “진정한 ‘자율’규제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심의 결과 ‘삭제’ 요청하면 포털 수용할까?
이날 발표 내용에는 방통심의위 심의 결과 언론 보도에 삭제 또는 차단을 결정할 경우 사업자들이 수용할지는 다뤄지지 않았는데 추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는 사업자에 시정요구를 하는 것으로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대부분의 국내 사업자들은 사실상 강제적 규제로 보고 협조하고 있다. 다만 언론 기사를 상대로 가짜뉴스로 규정해 대응하는 경우 방통심의위 내에서도 권한을 넘어선 일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포털 입장에서도 삭제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해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 손지원 변호사는 “방통심의위의 시정요구 결정은 법적 강제성은 없으므로 포털이 시정요구에 그대로 따를 의무는 없다. 포털상의 기사나 정보의 조치에 대해 포털이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만일 기사 내용의 허위성, 위법성에 대한 명백한 증명이 없는 정부의 부당한 시정요구 결정에 포털이 응하여 함부로 기사나 정보를 삭제, 차단한다면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